브릿지 리더십
역사 NGO대회와 지구촌 시민 강좌 참여 차 캄보디아에서 오신 Sil Sineg씨와
아시안브릿지 인턴활동가 박서희씨가 하룻동안 서울 투어를 한 이야기 입니다
화요일 주의보!
<덕수궁 앞에서 재현되던 수문장 교대식>
사실 덕수궁에 가보는 것은 나도 처음이었다. 하도‘덕수궁 돌담길’하면서 유명하니까 뭔가 기대할만한게 있을 줄 알았는데, 규모도 작고 딱히 볼 것도 없었다. 옆에 있는 미술관들은 따로 입장권을 끊어야 했다. 그리고 또 그날따라 일본 수학여행단이 단체로 와서 넓지도 않은 궁이 너무 붐볐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참 난감한 기분이었다. 좀 지치기도 하고 해서 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거기에서 Sil Sineng씨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었다. 가난했던 가정 환경, 가난 때문에 포기해야 했던 첫사랑이야기, 그리고 지금의 부인을 만나게 된 사연... 이야기를 듣다보니 캄보디아의 관습과 문화도 알 수 있었다. 결혼이 단순히 두 남녀의 일만이 아니라 집안 문제와 부모님의 영향력이 큰 것은 우리와 비슷했지만 캄보디아에서는 아직도 부모님이 결정하고, 중매로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특히나 내가 놀랍고 신기했던 것은 결혼하기 전까진 일체 신체접촉을 안하는게 관습이라는 것이다. 손조차 잡지 않고, 감정을 표현하는 말도 잘 하지 않는 다고 한다. 내가 그러면 어떻게 서로 좋아하는 것을 아느냐고 묻자 눈빛으로 다 통한다고 한다. 눈을 보면 알 수 있고 눈으로 말한다고. 그렇게 한참 이야기를 듣다가 남대문시장으로 향했다.
덕수궁에서 남대문시장이 가깝다고 해서 걸어서 갔다. 내가 중간 중간 길을 묻느라 종종 일시정지를 해야했지만, 가는 길에도 그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정부군의 습격을 받아 그가 일하던 NGO건물이 다 타버렸던 일, 그래서 오토바이택시를 몰며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일, 친척들의 도움과 노력 끝에 다시 NGO건물을 세운일... 어린 시절에는 가난해서 공부를 계속 할 수 없었지만 NGO의 지원을 받아 석사과정까지 공부할 수 있었다고 한다. 교육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캄보디아에서는 교사들이 급여가 낮아서 선생님들이 가르치는 일 외에도 두 세가지 일을 더 해야 생계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그래서 교육의 질이 낮을 수 밖에 없어 안타깝다고 했다. 캄보디아에 부족한 시설들도 짓고, 학교도 설립하고, 그 일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고 그것이 그의 꿈이라고 했다. “당신은 슈퍼맨처럼 그 간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잘해내왔으니까 반드시 꿈을 이룰 수 있을거에요.”나는 진심으로 말했고, 또 그것이 진실이 되리라 믿었다.
<평일에도 북적이던 남대문 시장과 단풍이 곱게 들기 시작한 저녁 무렵의 한옥마을 가로수 길 >
남대문 쇼핑을 하고 나서 저녁 약속이 있는 여의도로 가기까지 1시간 정도가 비었다. 어딜 가기에는 짧고, 여의도로 출발하기에는 너무 이르고, 시간이 너무 애매하게 남았다. 방금 전 덕수궁에서 한참 커피마시며 얘기했으니 또 어디 뭘 마시러 갈 수도 없고. 고민하다가 결국 택시타고 남산골 한옥마을로 가기로 했다. 급한 마음에 무작정 택시를 잡아탔는데, 택시기사 할아버지가 그 곳을 잘 모른다는 것이었다. 출발했는데 다시 내릴 수도 없고 할아버지가 대충은 알 듯 하다고 해서 그냥 갔다. 그런데 다 왔다고 도착한 곳에는 아무리 눈 씻고 찾아봐도 한옥이라곤 기왓장 하나 보이질 않았다. 아무래도 이상해서 내리기 전에 지나가던 분께 물었더니 아니나 다를까 되돌아가야 된다는 것이다. 시간 여유도 없는데 시간은 시간대로 잡아먹고 돈은 돈대로 많이 내고. 속상하긴 했지만 얼른 내려 그날의 마지막 코스로 열심히 갔다. 그런데. 그날 시트콤신이 제대로 강림하셨는지 한옥마을도 화요일이 휴관이라는 것이다! 기가 막히기도 하고, 허탈하기도 하고, Sil Sineng씨한테는 또 너무 미안하고 여러 감정에 참 막막했다. “아유, 어떡하나.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라며 안타까워해주는 직원아저씨 말에 “글쎄 그 장날 오늘 여러 번 맞네요.”하면서 허탈히 나올 수 밖에 없었다. 그냥 가자니 아쉽기도 하고 해서 밖에 정자랑 연못 있는 근처 한바퀴 둘러보기로 했다. 저물어가는 가을 저녁 햇살에, 곱게 물들어가는 단풍이 예쁘게 반짝이고 있어 아쉬운 마음을 조금이나마 달래주었다. 오늘의 뼈져린 교훈은 휴관일을 체크하자! 특히 화요일!
저무는 해와 함께 짧은 만남도 저무는 저녁
Sil Sineng씨가 저녁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한옥마을 바깥을 둘러보고나서 지하철을 타고 여의도로 향했다. 지하철에서 결혼에 대해서 이야기 하게 되었다. 캄보디아에서도 결혼할 때 돈이 많이 든다고 한다. Sil Sineng씨는 더군다나 결혼 하려던 무렵에 집과 NGO건물이 다 타버려서 친척들의 도움과 이자가 거의 사채에 가까운 어마어마한 대출을 해서 어렵게 결혼했다고 한다. 캄보디아에서는 이혼을 하게되면 여자에게 많이 불리하긴 하지만, 남자든 여자든 좋지않게 인식되고 지위가 떨어진다고 한다. 그래서 힘들더라도 웬만하면 이혼하지 않고 참으며 산다고 한다. Sil Sineng씨는 꼭 자유가 많다고 결혼생활을 잘 할 수 있는 건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자유로우면 좋은 점도 있지만 서로 안 맞는 부분을 맞추려는 노력을 덜하고 그냥 헤어지게 되는 면도 분명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어느덧 여의도에 도착했다. 역에서 나와 약속 장소 식당이 있는 백화점을 또 물어 물어 찾는 나를 보면서 Sil Sineng씨가 “서희는 오늘 정말 서울지리 공부하는구나.”라며 장난스레 말했다. 할 일이 있어 저녁식사를 함께하지 못하고 거기서 작별인사를 하는데 참 많이 아쉬웠다. 꼬여만 가는 상황에 어찌 대처할 줄도 모르고 우왕 좌왕하며 난감해하던 나에게 Sil Sineng씨는 얼굴 한 번 찡그리지 않았다. 괜찮다고 달래주기도 하고, 농담하며 장난스레 넘겨주기도 했다. 오히려 하루 종일 같이 다녀줘서 나에게 고맙다고 해주어서 참 미안하고 고마웠다. 내가 꼭 캄보디아 가서 연락하겠노라고 하며 악수하고 포옹했다. 백 마디 말보다 Sil Sineng씨 눈을 보니 고맙고 아쉽다는 눈빛으로 가득했다. 그렇게 Sil Sineng씨와도, 시트콤같이 우여곡절 많은 하루와도 작별을 고하며 집으로 향했다.
서울투어는 제대로 못했지만..
돌아오면서 오늘 Sil Sineng씨를 안내해주며 서울을 구경했다기 보다 내가 캄보디아를 여행하고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여곡절 많은 일들 덕분에, 서울의 유명한 곳을 구경하며 설명해주었던 시간보다는 걸어가면서, 택시안에서, 밥을 먹거나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 나눈 시간이 더 많았다. Sil Sineng씨와 서로 자기 나라와 자신에 관한 이야기 나누면서, 전에는 잘 모르고 관심도 없었던 캄보디아란 나라의 풍습과 문화, 현실 상황과 문제들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또 Sil Sineng씨의 살아온 이야기를 들으며 그의 삶 속에 들어있는 캄보디아를 느낄 수 있었다. 일정표에 있는 장소들뿐만 아니라 나도 오늘 자신의 투어의 한 부분이라 했었던 그의 말. 그리고 캄보디아에서 말로 할 수 없을 때 수없이 마음을 전했을 Sil Sineng씨의 눈빛에서 그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으리란 생각을 해본다. 시트콤 같은 하루가 몰고 온 회오리바람을 타고 관광으로는 보지 못할 캄보디아의 깊숙한 곳을 여행하고 돌아온 어느 가을날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