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 공정여행 메콩강을 가다](下)중국 윈난성 다리·리장
글·사진 이청솔 기자 taiyang@kyunghyang.com경향신문
 
ㆍ천년 지혜 둥바문자로 구불구불 그려보는 내 이름

중국인들이 즐겨 쓰는 말 중에 ‘중화민족(中華民族)’이라는 단어가 있다.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국민을 상대로 연설할 때도 ‘우리 중화민족’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현재 중화민족은 사실상 중국인과 같은 의미로 쓰인다. 중국에는 인구의 92%를 차지하는 한족(漢族) 외에도 55개 소수민족이 살고 있다. 이들을 배제하지 않고 포괄하기 위해 필요한 단어가 바로 중화민족이다. 중국인들이 자신들이 사는 땅을 ‘중원’으로 부르며 중화주의에 젖어 있을 당시 ‘오랑캐’에 불과했던 55개 민족은 이제 중화민족이라는 테두리 안으로 들어왔다. <삼국지>에서 촉한의 제갈량이 남만(南蠻)왕 맹획을 7번 잡았다 7번 풀어주었다는 칠종칠금(七縱七擒)으로 유명한 윈난성(雲南省) 역시 ‘오랑캐의 땅’이다. 윈난성에는 55개 소수민족 가운데 절반 가까운 25개 민족이 살고 있다. ‘아시안브릿지’와 함께하는 ‘착한여행-메콩강 시리즈’ 중국편에서 윈난성을 찾아 중국 소수민족 문화의 정수를 느껴보았다.

나시족 둥바가 지난 1일 리장 둥바문화전수원에서 여행팀에게 둥바문자로 춘련(중국인들이 신년을 맞을 때 써서 문이나 기둥 등에 붙이는 구절)을 써주고 있다.


바람, 꽃, 눈, 달의 고장 다리

여행 나흘째인 지난달 29일 도착한 다리바이족자치주(大理白族自治州)는 지금은 인구가 300여만명에 불과해 중국 기준으로는 지방 소도시지만, 꽤 화려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937년부터 1254년까지 윈난성 대부분을 통치했던 다리국(大理國)이 이곳을 기반으로 세워졌다. 다리국은 송나라가 중원을 지배할 때까지 세력을 유지하다 원나라의 거센 공격에 무너졌다. 이 지역에 대리석이 풍부해 다리라는 나라 이름을 갖게 됐다고 한다. 현재 다리 인구의 60%가량이 바이족이다.

여행팀이 29일 다리에 도착해 처음 받은 인상은 ‘하얗다’는 것이었다. 흰색을 좋아하는 바이족은 건물 외벽을 주로 하얗게 칠한다. 전통가옥은 물론이고 새로 짓는 집들도 건물 양식은 서구식을 좇더라도 색상과 무늬만은 자신들의 전통을 따른다. 여행팀은 30일 방문한 민가에서 다리족 전통 건축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다리족은 전통가옥 내부에 시야를 가로막는 하얀 벽을 정면에 세운다. 답답해 보이는 벽을 왜 집 안에 세워 놓느냐고 물었더니 햇빛을 반사해 건물 1층을 더 밝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지리적 요건 때문에 남향을 택할 수 없어 나온 고육책이다.

바이족 여성들의 전통 복장에서도 단연 흰색이 돋보인다. 특히 하얀 깃털 장식이 들어간 머릿수건은 다리의 네 가지 풍경인 바람, 꽃, 눈, 달(風花雪月)을 반영한다. 머릿수건의 하얀 부분은 눈을, 술 장식은 바람을, 오색의 자수는 꽃을, 전체 모양은 달을 상징한다. 다리에는 해발 4200m인 창산(蒼山)이 자리잡고 있어 바람이 많이 불고 산 정상 부근에는 늘 눈이 쌓여 있다. 반면 위도가 낮아 저지대는 따뜻한 덕분에 1년 내내 꽃이 핀 모습을 볼 수 있다. 내륙에 위치해 평생 바다를 한 번도 보지 못한다는 바이족이 바다처럼 여기며 사는 호수, 얼하이(海)가 달처럼 생겼다고 주민들은 이야기한다.

바이족의 전통신앙, 본주신앙

여행팀이 지난달 30일 다리 바이족 민가에서 직접 바느질염색 준비를 마친 스카프 천을 들고 대형 날염 스카프 앞에 서 있다. 왼쪽 아래 여성이 머리에 쓰고 있는 것이 바이족 여성들이 쓰는 전통 머릿수건.

30일 여행팀이 바이족 민가에서 나와 마차를 타고 향한 곳은 본주(本主) 사원이었다. 바이족은 여전히 독특한 민간신앙인 본주신앙을 믿고 있어 종교 행사가 있는 날에는 사원에 마을 주민 4000~5000명이 몰려든다고 한다. 한 달에 한 차례쯤 찾아오는 종교 기념일을 앞두고 집집마다 피워놓는다는 붉은 향을 여행팀도 직접 볼 수 있었다. 본주신앙은 ‘원래의 주인’이라는 뜻으로 조상신과 비슷한 본주를 숭배하지만 바위, 물소, 태양 등도 섬겨 도교적 측면이 있다. 게다가 지금의 본주사원에는 미륵불, 아미타불 등 불상들도 모셔져 있어 불교, 도교, 민간신앙이 결합된 모습을 보인다.

다리는 또 약재를 이용한 전통 염색으로 유명하다. 여행팀은 민가에 차려진 염색 공장을 찾아 직접 날염 스카프를 만들어 보았다. 염색 과정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듣게 되리라 생각했지만 우리를 맡은 바이족 ‘선생님’은 천에 자신이 원하는 문양을 그리라는 지시부터 내렸다. 여행팀에게 가장 인기 있는 디자인은 나비였다. 한 참가자는 호기 있게 사군자를 그려 주위를 놀라게 했다. 도안을 완성한 후 염료에 천을 담그면 스카프가 완성될 거라는 게 여행팀의 예상이었지만 선생님은 우리에게 직접 바느질을 해 염색 준비를 마치도록 했다. 참가자들은 서툰 솜씨로 바느질을 했다 뜯어냈다를 반복했다. 몇몇은 복잡한 문양을 그린 것을 후회했다. 또 남성 참가자들 상당수는 “평생 이렇게 오래 바느질을 해본 것은 처음”이라고 실토했다. 4시간여 만에 겨우 바느질을 마친 여행팀은 쪽으로 만든 전통염료에 천을 담가 보라색 스카프를 완성했다. 이곳에서는 여행팀의 도안보다 훨씬 정교한 디자인의 대형 스카프들을 70위안(약 1만2000원)에 팔고 있었다. 참가자 노경섭씨는 “만드는 과정을 직접 체험해보고 나니 70위안의 가치를 알 것 같다”고 말했다.

차마고도의 주요 거점, 리장

중국 먀오족(苗族) 소녀들이 지난달 27일 광시좡족자치구 양수어에서 상연된 장이머우(張藝謀) 감독·연출의 공연 <인샹류산제(印象劉三姐)>에서 온몸에 장신구를 착용한 채 모습을 보이고 있다. 먀오족 여성들은 몸에 은으로 된 장신구 6㎏ 정도를 착용하고 다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리가 바이족의 근거지라면 리장(麗江)은 나시족(納西族)의 고장이다. 여행팀은 31일 오전 다리에서 태극권을 배운 후 바로 리장으로 출발했다. 리장은 다리보다 더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늘 흰 눈에 덮여 있는 해발 5400m의 위룽쉐산(玉龍雪山)이 자리잡고 있으며 리장고성(古城) 역시 해발 2400m의 고지대 위에 있다. 리장은 실크로드보다 200여년 앞서 만들어진 교역로인 차마고도(茶馬古道)의 주요 거점이다. 차마고도는 윈난성에서 티베트를 넘어 네팔, 인도까지 이어진다. 여행팀은 새해 첫날 오후 50여분 동안 말을 타고 차마고도를 직접 경험했다. 여행팀이 탄 말들은 조련이 잘 돼 있어 큰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았지만 몇 마리는 길을 가는 도중 쉴 새 없이 배변했다. 길 위에 말똥이 널려 있고 말들이 느릿느릿 가는데도 자동차 운전자들은 경적을 울리는 법이 없었다. 나시족 주민들은 지금도 가까운 거리를 갈 때 말을 주로 이용한다. 어린아이들이 말을 타고 노는 모습도 보였다. 대규모 교역이 이루어지진 않지만 여전히 ‘말의 길’이라고 할 만했다.

나시족의 신비로운 둥바문화

바이족이 본주신앙을 믿는다면 나시족에게는 둥바(東巴)교가 있다. 둥바는 나시족 말로 ‘지혜자’를 뜻하는데 일종의 사회 원로다. 나시족은 제사를 지낼 때나 중요한 일을 결정해야 할 때면 둥바를 찾아 지혜를 구했다고 한다. 둥바는 작문, 노래, 그림, 무용, 기술 등에 모두 능한 사람이다. 남성만이 둥바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나시족 사회에선 남자들이 둥바를 목표로 음악, 학문, 그림 등을 익히는 데 매진하고 생업은 여자들이 꾸려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실제 가정 내에서는 오히려 여자들이 더 큰 발언권을 행사하는 문화가 형성됐다고 한다.

둥바문화의 가장 특징적인 유산은 둥바문자다. 현재 사용되는 문자 가운데 유일한 상형문자인 둥바문자는 당나라 때 만들어져 1000여년의 역사를 갖는 것으로 전해진다. 여행팀은 귀국 전날 마지막 일정으로 둥바문화전수원을 찾아 둥바에게서 둥바문자로 자신의 이름을 쓰는 법을 배웠다. 문화대혁명 당시 중국 정부의 문화말살정책으로 인해 둥바는 현재 10여명밖에 남지 않았다고 한다.

인구 180여만명의 바이족과 30여만명의 나시족. 이들은 12억 한족 사이에서 자신들의 문화를 지키기 위해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일부 소수민족들의 문화는 제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 이족(彛族) 여성의 경우 몸에 문신을 해야만 미인으로 인정받았다고 하지만 지금은 ‘잊혀진 전설’에 불과한 이야기다. 나체에 가까운 복장으로 산 속에서 원시생활을 하며 검은 피부를 자랑하던 와족(族)들은 정부에 ‘징발’돼 중국 곳곳의 관광지로 보내졌다. 그들의 생활을 보여주는 것이 돈벌이가 된다는 이유에서다.

무엇보다 중화민족 이데올로기를 앞세워 소수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중국의 일부로 귀속시키려는 중국 정부의 시도는 이미 소수민족들에게도 먹혀들고 있었다. 원나라에 점령당하기 전까지 변방의 오랑캐 땅이었던 리장이 ‘중국에 속하지 않았을 때는 어떤 나라를 이루고 있었냐’고 기자가 묻자, 나시족 현지 가이드는 “리장이 중국에 속하지 않았던 적은 없다”며 발끈했다.
profile